李文世
歌手名:李文世
年龄:1959.1.17.首尔
高:178cm 重:80kg 出道:1978.CBS-seventy mc 学历:民智大学(명지대학교 대학원 정보처리학) 韩国著名歌手,在1980-1990 这个时期带来过韩国音乐界的风潮,而且他不仅仅是歌手还担当过电视主持人 收音DJ,是韩国当之无愧的巨星!
출생
1959년 01월 17일 / 서울, 대한민국
데뷰 (Debut)
1983년
취미
배드민턴
학력
-서울 광성고등학교
-명지대학교 기계공학과
-명지대학교 대학원 정보처리학과
가족
아내, 슬하 1남
신체조건
B
장르 팝
스타일발라드 (Ballad), 어덜트 컨템포러리 (Adult Contemporary), 팝 (Pop)
프로필
- 수상경력
1985년 MBC 라디오부문 연기대상 우수상
1986년 골든디스크상
1987년 MBC 라디오부문 연기대상 최우수상 , 골든디스크상
1988년 MBC 10대 가수상, 골든디스크상
1989년 MBC 10대 가수상
1993년 골든디스크상, MBC 연기대상 MC상
1996년 MBC라디오 골든마우스상, KBS 10대 가수상
- 방송활동
1985~1996년 MBC라디오 DJ
1993년 MBC MC
1996년 HBS스페셜 MC
1997년~ MBC FM라디오 MC
유난히 얼굴이 긴 생김새 탓에 '마굿간', '홍당무' 등, 말과 연관된 닉네임으로 유명하며, 오랜 방송생활을 통해 DJ, 방송계 행사진행자 등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진 이문세는 다재다능한 방송인으로서의 유명세만큼이나 20년에 다다르는 가수생활이 말해주듯, 오랜 경력을 지닌 베테랑 가수이다.
1978년 CBS 방송국의 '세븐틴'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시작으로 해서 연예계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1970년대 한국음악의 근간이 되었던 통기타 포크음악계에서 무명 가수로서의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수로서의 활동에도 그 첫발을 내디딘다. 그래서 그의 연예활동은 미미한 가수생활의 시작과 화려한 방송진행자라는 포지션을 언제나 병행해가며 진행됨을 알 수 있다.
1981년 8월 "나는 행복한 사람"을 발표하면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 1984년에는 2집 "파랑새"를 발표했찌만, 팬들의 주목을 끄는데는 실패한다. 오랜 고민 끝에 그의 가수로서 성공은 1985년 작곡가 이영훈을 만나게 되면서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이영훈과 함께 준비한 3집앨범 중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되면서 그해 방송 순위 1위에까지 오르며 인기 가수 대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런 인기는 1987년에 발표한 4집에까지 이어지고, 고은희와 함께 부른 듀엣곡 "이별이야기"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리메이크되는 이별곡의 백미로 남게되면서 가수로서 이문세의 입지를 세우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며, 같은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 역시 인기를 얻어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판매고를 올리며 최고가수로서 인기를 확고히 한다. 이어서 1988년에 발표한 5집에서는 3,4집 만큼의 폭발적인 히트만큼은 아니더라도 "시를 위한 시"를 위시한 그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히트곡을 연이서 발표해 그 인기를 꾸준히 이어간다. 1989년에 발표한 6집은 이전의 인기와는 다른 개인적인 성찰이 담긴 앨범으로 자신의 음악적인 입지를 다졌으며 1991년 7집에서는 그동안의 자신의 음악과는 다른 변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1993년 8집에서는 이제까지 자신의 음악 동반자였던 이영훈놔 결별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만들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이런 변신과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가요계의 판도변화와 인기장르의 변화는 이문세를 예전의명예를 지닌 가수 만으로 인식하는 하강곡선을 타게 된다. 1995년 발표한 9집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팬들의 기대에 못미치는 반응을 얻어 이런 하강세의 정점에 있을을 알게 한다.
9집의 실패를 계기로 이문세는 당시 새롭게 불기 시작하는 가요계의 젊은 감각을 자신과 화합하길 바라는 제스쳐를 취하는데, 스스로 기존의 단순한 앨범 제작 방식을 탈피해 보다 적극적으로 젊은 작곡가와 음악인들과 왕래를 하기 시작, 당시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젊은 작곡자들을 비롯, 새로운 음악인들을 만나게 된다. 김현철, 유희열, 정원영, 이적 등과 함께 음반 작업을 하고 이소라와, 노영심과는 새로운 음악활동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 1996년에 탄생된 이문세의 10집 '화무'는 당시 유행하던 '추억'을 테마로 9집의 실패을 만회시킨 앨범으로 기억된다.
이런 인기 가수로서의 복귀를 향한 일련의 가수활동과 함께 계속되어온 방송활동은 가수로서의 음악적인 발판을 확고히 하기 위해 또 다른 결단을 요구, 급기야 1998년에는 10년동안 진행해온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마저 접고 11집 앨범을 발표하고 진정한 가수로서 돌아오게 된다. 이런 이문세의 노력은 가수로서의 활동 경력으론 노장가수라 부를만 하지만 기존의 자기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자신의 음악에 담으며 꾸준히 노력, 젊은이들과 30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가수로 기억되며, 1999년 자신의 음악적 스승인 이영훈과 다시 의기투합애 만든 앨범 '애수(哀愁)'를, 2001년엔 13집을 발표하면서 꾸준히 가수활동을 이어오며 자신의 건재함을 확인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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